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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현
목사[20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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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한 세대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작업이다. 그래서 사람 사는 사회에서 교육만큼 중요한 작업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교육'은 그러한 의미인가. 세상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교육 목표와 내용은 과연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주님은 사단을 이기시고 '사로잡힌 자'인 마귀를 사로잡고 승리자의 모습으로 하늘 위로 올라가셨다(8-10절). 주께서 하늘 위로 오르신 것은 그 아래 만물이 다 하늘에 이르는 목표를 가지게 하려는 뜻이었고, 그럼으로써 만물이 하늘과 하나가 되기까지 충만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10절). 다시 말하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움직여지게 하는 것이 주님이 만물에 부여하신 목표인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기 위해 주님은 하늘에 오르실 때에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9절). 그 선물은 물질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고 바로 '사람들'이었다(11절). 주님의 목표를 이룰 방편으로써 세상에 주신 선물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교회를 정황으로 하는 지도자들을 주신 것을 보게 된다.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일을 교회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주님의 의지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한 목표로만 교육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만물을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케 하는 일을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1. 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이 되어야 한다(8-11절).
우리는 보통 성령의 은사(=선물, gift)를 생각할 때 개인적인 목적과 유익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은 교회를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충만케 하기 위해 성령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자들이다. 그중 공통의 선물은 '교사'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겐 '교사로서의 부르심'이 있다(요 21:15-17,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 부르심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에겐 어느 누구라도 예외 없이 임한다. 주님을 처음 믿을 때는 교회의 터를 닦았던 사도나 선지자(2:20), 곳곳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딤후 4:5), 그리고 개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벧전 5:1-3)의 도움을 받아 시작하지만 모두는 장성한 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어야 할 '교사'로서의 영적인 의무들을 가지는 것이다(딤후 2:2). 결코 받아먹는 자로만 교회에 있을 것이 아니다. 그래서...
2.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성숙함을 도와주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명함이 아니다. 교사는 기능(Function)이다. 교사는 사람을 '준비시키는 일(12절, 온전케, prepare)'을 하는 자이다. 무엇을 위한 준비인가. 그것은 '봉사의 일'(12절)이다. 곧 교사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어 각자 서로의 성숙함을 도와줄 수 있는 봉사의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자이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이 제 기능을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세월 교육을 받아오면서 얼마나 명함을 목표로 하여 교육을 받아 왔던가. 훌륭한 사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뭔가 위로 올라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해 왔다. '돈 잘 벌기 위한 기반을 닦는 것'이 지금껏 공부해 왔던 목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지만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자식에게도 다시 공부를 강요하면서 명함을 따기 위한 공부를 요구하길 반복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교육은 교회만 아니라 사회를 파멸시키고야 만다. 그릇된 교육으로 병든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싶은가. 하나님께서 봉사자를 준비시켜 가시는 '교회 교육'에 나의 부르심이 있는 것을 알라. 그 교육만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12절), 나아가 사회 또한 변화시킨다는 것을 생각하라.
또한 교사는 배우는 자를 자기 수준으로 올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준에까지 올려야 한다(13절). 이는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누가복음 17:7-10이 말하는 바의 모습을 지닐 때 가능하다. 누가복음 17:7-10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가 '순종하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기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에 이어서 끝까지 섬기는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 종의 자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만물의 순종함을 자아내는 믿음을 가진 자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섬김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을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결국 참 믿음은 참 봉사와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다. 믿는 것에 하나가 되는 것, 그것도 주께서 요구하는 믿음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섬김을 동반한다. 바꿔 말하면 봉사가 없는 자에겐 만물이 그 사람을 섬겨야 할 이유가 없고, 그 결과 아무리 믿음을 가진다 해도 만물이 자기의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그런 곳에 '믿는다,' '안다'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고야 무슨 상호간의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심지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격조차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3. 교사는 누구보다 다른 교훈과 다른 기준을 버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진리를 단순하고 곧게 적용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세상의 가치관도 조금 생각해 보고 진리도 조금 생각해 보고, 그렇게되면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는 일만 있을 뿐이다. 교사는 참된 교육의 방향과 성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 지를 아는 자여야 한다. '그에게까지(into Christ)'라는 말은 흔들리는 사조에서 진리를 보여주는 등대와 같은 말이며, 교사는 언제나 그 등대를 비춰 보여줄 수 있는 자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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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의 성장은 누구 한 개인의 일이나 책임이 아니다. 각 마디가 서로 도와 제 기능을 발휘할 때 몸은 성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마디가 머리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 골로새서 2장 19절은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란다는 것'이다. 개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드리고, 봉사자의 일을 묵묵히 감당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자라나게 하심을 따라 몸의 자람을 체험할 것이며, 스스로도 커 가는 은혜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육이 낳는 참된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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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서 만물을 충만히 채우는 것이 주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교육의 목표인 것을 알았습니다. 결코 봉사의 일이 없고서는 이 일이 불가능하며, 서로가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모두가 함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여 자라 가는 일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것을 알았습니다. 몸이 커감으로써 각 지체들도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