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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정의
사람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확신내지는 믿음을 갖습니다. ‘눈’은 물질적인 세상을 보고 확신을 얻는 매체이지만 때로 사람은 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까지 확신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서 에베소에는 “큰 아데미”(행 19:35)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 우상을 모신 전각(殿閣)은 칠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서 19미터 높이의 기둥 127개로 이뤄져 있었으며, 길이와 너비는 110미터와 55미터에 달했습니다. 그 거대한 규모를 보면 큰 신이 참으로 존재한다고 착각할 수 있었습니다. ‘마술’도 착각을 이용하여 뭔가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확신을 사람에게 심어줍니다. ‘정보’도 근거나 증거가 확실할 때나 공신력 있는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될 때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사람의 생각에 확신 내지는 신빙성을 불러일으킵니다. ‘무당‧박수’는 영매나 신접함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귀신들’이나 ‘표적‧기사’도 그러하고, ‘꿈’이나 뭔가 섬뜩해지는 ‘두려움’도 그러합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생긴 확신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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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 엡 2:8). 믿음은 하나님이 전하신 계시(=하나님의 말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참되게 접하는 첫 창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그 말씀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소망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과 나라’를 실상(實像)과 확실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미래로만 여기지 않고, 미리 당기어 ‘현재(現在;=현실세계)’로 삼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을 ‘하나의 세상’으로 삼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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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 히브리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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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상
여기서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고 할 때 그것은 미래에 있을 세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세상은 ‘하나님 차원의 세상’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바로 우리의 세상과 하나님의 세상이 공존하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 세상을 거부하거나 두 세상을 분리해서 삽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이 분리될 수 없는 ‘한 세상’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확인해 주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8-19).
육체의 눈이 볼 수 없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세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을 뜨여주시면 그 세상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아람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엘리사의 사환이 두려워하자 엘리사는 여호와께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열어주시자 그 사환은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있는 것을 봅니다(왕하 6:14-19). 이것은 환상에 불과한 허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공존 세상’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요일 5:4). 보이는 것을 “나타난 것”과만 연결하는 것이 세상의 한계인 반면성경 안에서는 “모든 세계” 곧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하나로 다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안에서 우주의 실체를 깨닫습니다.
하나님과 동행
두 세상이 하나의 세상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말에서 가장 확실해집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처음 사람으로서 ‘에녹’을 소개합니다(창 5:22-24).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세상과 땅의 세상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세상’으로 삼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패역한 사람들에 대하여 예언할 때 심판주로 임재하신 하나님을 실제 눈앞에서 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15절).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증거합니다(창 5:24). 이 말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저를 옮기셔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5절). 하늘과 땅을 ‘한 세상’으로 산 그에게는 죽음을 거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무의미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원인은 그의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상을 보는 세상 안으로 온전히 끌어당겨 실상(實像)으로 산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나오는 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6절). 믿음은 ‘세속의 연장, 욕심의 연장’이 아닙니다. 내 의지를 굳히고, 사고의 방향을 한 곳으로 고정하려는 결심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실체를 보는 눈이요 이 땅에 살면서 또한 ‘하나님의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고, 믿음의 사람은 자기를 찾으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상을 얻습니다. 이 믿음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5절)를 받아 영원히 기억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절대로 사람의 뜻이나 목표를 이루려는 수단(예, 긍정적인 사고)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게서 나오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들을 때 우리 안에 생겨나는 반응으로서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태도”(고전 10:31)이며,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태도”(골 3:17)입니다. 이것이 산 믿음이요 하나님께 나아가며 가지는 믿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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