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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귀로는 많은 것을 들어서 대강 진리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여전히 주님을 섬기는 것이나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일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것은 남 얘기입니까?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해 볼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이며, 그 정의에 따라서 나는 참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점검해야 할 가장 우선된 항목은 ‘나의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연 성경이 ‘나의 믿음’을 확인해 주고 있는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얘기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리 모양이 좋아도 믿음일 수 없고, 그러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한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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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난 널 믿어’라고 얘기할 때 여기에는 분명 신뢰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두 개체입니다. 둘에게는 신뢰 문제를 떠나서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신뢰감이 드는 한에서만 같이 나눌 수 있는 삶이 있고, 그 외에 돌발적인 일이 생기거나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금방 신뢰가 사라집니다. ‘내가 얼마큼 친구를 믿어주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신뢰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의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신을 의지합니다. ‘신의 존재’에 강하게 매달립니다. 초자연적으로 느껴지면 무조건 따릅니다. 마리아든 벽걸이 성화이든 돌이든 무당이든 기적이든 뭔가 신비와 힘이 느껴지는 곳에 자기 마음을 두고 의지합니다. ‘위기용(用) 신앙’입니다. 자기가 약하기 때문에 혹은 인생에 위기가 닥쳤기 때문에 신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여러 종교에서 이러한 믿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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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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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하면서 다른 경우는 조상 때부터 전통에 따라서 신을 믿어왔기 때문에 신을 떠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신에게 매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이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구속(拘束)입니다. 전혀 기쁨이 없고, 진리 안에서 자유가 없으며, 신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신 안에 머물게 되는 동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념 혹은 신조를 내세워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없고, 주관이나 주장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고, 자기가 믿는 바에 대한 고집이 대단합니다. 자신을 신자(信者)로 내세우지만 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자기가 믿는 신념이 진리보다 더 강한 주장이 되는 그러한 믿음입니다. 인생이 여전히 자기 것이고, 하나님마저도 자기 생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 안에서 수용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3절) 사는 태도의 전형입니다.
또 다른 믿음은 아예 믿음이라고 얘기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소위 말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믿음입니다. 외면에는 하나님이 있지만 내면의 꿈과 이상은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남보란 듯이 멋지게 사는 것을 꿈꿉니다. 돈버는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돈이 될 수 없는데도 돈을 쫓아 살려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이들은 위세를 떨치고 싶어 합니다. 남들 앞에서 버젓이 나타내는 그런 지위를 원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에도 형제‧자매로 안 보고 사장, 박사, 교수 등으로 봅니다. 또 그러한 호칭으로 형제, 자매를 부르는데 익숙하고, 자기도 그렇게 불려지길 원합니다. 절대로 그 이상으로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가 넓어지거나 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위의 믿음들은 (아니 믿음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만) 절대로 ‘그리스도인의 현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모습들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과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5절;=“하나님의 선물로”, 8절) 구원을 얻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5-6절).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그리스도로 구속(救贖)하셨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묶으셔서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우리의 현실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고, 그리스도의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내 편에서 하나님을 믿어주는 신뢰’도 아니요, 내 주관을 내세우는 신념도 아니며, 신앙 전통을 따르거나 신에게 구속(拘束)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자기 스스로나 다른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8절)을 가졌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도 자기 구원에 대해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 웬 은혜인가?
‘하나님! 이 웬 은혜입니까?’ 하고 물으면 성경은 두 가지로 답하여 줍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7절)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들에게 이것이 은혜요 지극히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증거를 대대로 보여주시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10절)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선한 일(=하나님의 일)을 창조 세계 안에서 이루도록 뜻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단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라는 얘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이는 세계에 나타내는 최고의 영예를 가진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은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 “전에 예비하신” 것이어서 반드시 이뤄지며, 그 일을 위하여 우리가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기 진로를 임의로 정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대로 행하며 살아야 할 인생입니다. ‘인생에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자’라는 얘깁니다. 길이 정해졌다는 것은 수동적인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뚜렷하고, 가장 큰 힘을 발휘하며, 끝내 목적을 이루는 것이 보장된 인생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나오는 말: “나의 나 된 것”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이 고백에는 ‘그리스도인의 과거’와 ‘그리스도인의 현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빚은 결과요 계속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만들어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단이 놓은 ‘떡과 지위와 영광의 덫’(마 4:3, 6, 9)에서 빼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은 행실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그 죽은 행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하나님의 선한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까? 하나님께서 해 주신 다음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십니다(마 19:26).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이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가지신 그 목적을 이루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1:12). 그러하니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히 10:39)인 것을 알고, 다시는 죽은 행실로 다시 돌아가거나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만 머물지 말고, 주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내심을 소망하면서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며”(요일 3:2-3)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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